이 시대의 덕후가 프레임에 대처해야만 하는 이유

— 여성 게이머를 향한 이중성

(출처 : 구글 검색)

 

게임을 하다 보면, 특히 싸워야 하는 대상이 몬스터가 아닌 진짜 사람인 경우일수록 승패 여부와 관련된 감정 싸움이 격해지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게임은 익명성이 기본이 되는 공간이기에 게이머의 공격성은 오프라인에서 얼굴을 마주보고 있을 때 보다 격렬해진다. 채팅과 보이스톡을 통한 무차별적인 인신공격부터 저열한 깎아내리기까지 익명이라는 이름의 악의를 마주하고 있노라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인간의 더러운 부분을 보고 만 듯한 기분이 든다.

문제는 처음 보는 상대에게도 거리낌없이 폭언을 퍼붓게 만드는 익명성이 한 꺼풀을 벗었을 때 더욱 심각해진다는 데 있다. 이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향해 욕을 퍼붓는 것 보다는 애초에 불편한 감정을 품고 있던 사람을 향하는 편이 수월하게 폭언을 퍼부을 수 있음과 맥락을 같이 한다.

그렇다면 게이머에게 있어 애초에 불편했던, 유감과 악의를 드러내기 편한 대상이 누구인가에 대한 부분이다. 여러가지 답이 나올 수 있겠지만 이 시점에서 우리는 자연스레 이 문제를 떠올리게 된다.

 


(출처 : 구글)

 

여자가 게임을 하면 신기하다 여자는 게임을 해도 힐러나 서포터를 주로 한 여자는 이성적이고 냉정하지 못해서 전략과 컨트롤이 필요한 게임을 할 수 없다. 여자 유저는 팀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이다?

이 외에도 여자가 마우스를 잡고 모니터 앞에 앉으면 들을 수 있는 차별적인 언사들을 서술하자면 한 면에 다 적지 못할 정도이다. 그나마도 위의 표현들은 성희롱 발언이나 여성에게만 사용할 수 있는 특정한 욕설을 빼고 서술하였으니 굉장히 수위가 낮은 축에 속한다. 아찔하게도, 여성 게이머에게 게임이란 시스템 상에서 매치된 적 팀뿐 아니라 뿌리깊은 차별에도 맞서야 하는 고된 전장과도 같아진 지 오래이다.

그렇다. 폭력은 그 성질이 어떠하든 누구에게나 고통스럽고 아픈 것이다. 이때 이 폭력이 누군가가 속한 집단에만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된다면 문제는 보다 심각해진다.

뫄뫄는 이 집단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당연히 이러할 거야. 솨솨가 속한 집단은 A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니까 솨솨를 A라고 정의해도 큰 문제가 없을 거야. 놔놔는 이 카테고리 안에 속하니까 친구인 촤촤도 당연히 그 카테고리 안에 속하겠지?

등등의 예시처럼 애매하고 추상적인 내면의 무언가를 외부의 누군가에게 설명하거나 정의하기 위해 일반적인 표현이나 생각을 빌어 구체화 시키는 행위를 ‘대상화’ 한다고 한다. 말이 복잡하다 뿐이지 실은 간단한 개념이다. 어제 먹었던 사과를 설명하기 위해 둥근 원을 그리거나 빨간 색을 칠하는 행동을 위의 설명에 대입해보면 된다.


프로게이머가 게임 중 여자, 그것도 고등학생임이 밝혀졌을 때
(출처 : https://www.twitch.tv/videos/73112649)

 

다시 여성 게이머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결국에는 게임 내에 만연한 여성 게이머 차별과 혐오 역시 어떠한 과정에 의해 이루어진 대상화에서 비롯된 꼬리표라고 볼 수 있다.

여성은 신체 조건이 떨어지기 때문에 보다 유리한 조건을 지닌 남성이 보호해야 한다. 여성은 특정 신체 부위의 생김이 남성과 다르며 이는 여성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다. 여성은 전자기기에 약하다. 여성은 소극적이며 보조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여성은 능동적이지 않아도 괜찮다.

상당 기간 게임이 남초(남성 비율 초과) 콘텐츠였었던 것을 감안해보았을 때, 그들에게 있어 일반적이고 친숙한 존재가 아니었던 여성 유저는 자연스럽게 ‘애매하고 추상적인 존재’가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회가 형성되는 과정 속에 자리잡은 여성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와 남성이 주가 되었던 ‘문화적인 특성’이 합쳐져 ‘구체화’되었다. 어떤 개념을 정의 내려야 말이 통하는 구조적인 흐름 속에 환상 속의 생물처럼 여겨졌던 ‘여성 게이머’에 대한 어긋난 대상화는 아마도 이렇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이루어진 일련의 과정은 여성 게이머에 대한 편견이라는 이름으로써 고착되었다.

(출처 : 구글검색)

여기까지 설명을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편협한 개념과 일방적인 정의가 만나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는지 설명하고 싶었는데 잘 되었는지 모르겠다.

편견, 요즘 어감으로 설명하자면 ‘프레임’이라 불리는 개념은 이런 절차를 통해 만들어진다. 어떤 대상화는 무척 빠르게 어떤 대상화는 아주 느린 기간 서서히 진행되며 사회 구성원의 동의와 수정을 거치며 자리를 잡아 또 하나의 개념이 된다.

개념이자 편견이며 질서이자 굴레이기도 한 프레임은 일종의 쿠키커터 역할을 해낸다. ‘틀’이라는 이름에 부족함이 없다. 모든 개념에 이 프레임을 가져다 대기만 하면 기적처럼 편안하고 이상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좀처럼 정의할 수 없는 불안하고 불편한 존재도 프레임만 있다면 내가 아는 것이 되니, 이 얼마나 편안하지 아니한장차 무엇이 될지 모르는 반죽보다는 쿠키커터로 찍어낸 곰돌이 모양이 안정적인 것은 무척이나 당연한 세상의 이치이다.

어떤 편견은 사회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또 어떤 편견은 부정적인 의도와 방식에서 비롯하고 결국에는 뿌리내려 누군가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여기서 가장 놀랍고 두려운 부분은 이 편견이라는 쿠키커터가 무조건 부정적인 환경에서 자라나는 물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때로는 편견에서부터 벗어나고자 시작했던 일들도 또 다른 편견을 낳을 때가 있다.


(출처 : https://twitter.com/Geguri2)

 

오버워치의 유명한 게이머가 트위터에 자신의 입장을 표명했다. 이 게이머는 인간의 것이 아닌 컨트롤 때문에 자동 조준을 해주는 핵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받기까지 하던 실력자였다. 급기야 누군가 이 게이머가 실력이 아닌 핵을 사용하여 게임을 하고 있다며 의혹을 제기하기에 이르렀고, 일파만파 퍼져가던 논란은 본인이 직접 플레이를 인증하며 잠식되었다.

그 게임을 플레이 하지 않으며 사건 전까지만 해도 논란의 게이머를 몰랐던 필자가 해당 사건을 자세하고 기역하고 있는 이유는 따로 있지 않다.

아는 사람은 알고 있겠지만 해당 사건에 걸쳐 있던 논쟁거리는 한 가지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핵 사용 논란이었지만, 중간부터는 게임계와 성차별에 대한 이슈가 추가되었으며, 마지막에는 프로게이머들의 태도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그야말로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졌던 매머드급 사건 중 하나였다.

사건의 발단은 핵 논란이었지만 아마 우리들이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을 이슈는 게임 계의 뿌리깊은 여성 게이머 차별 논란일 터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앞서 의혹을 받았던 게이머가 직접 게임을 플레이하며 핵 사용자가 아님을 인증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을 거치던 중 그 게이머의 성별이 여성임이 밝혀졌는데, 이를 두고 일부 무개념한 게이머들과 사건에 의혹을 제시했던 인물이 그의 실력이 아닌 성별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트위터 이용자이자 여성 게이머였던 이들이 고질적인 게임계의 성차별을 지적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공격받는 현실을 지적하고 편견을 바꿀 때가 되었음을 외쳤다. 실력과 능력보다는 성별이 주목 받는다. 이 때문에 본디 받아야 할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공격받는 현실에 질린 여성 게이머들이 한 곳에 모였고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 기사는 게임계의 프레임과 차별을 다루는 기사인아니다. 필자가 해당 사건을 언급하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필자는 사건이 발생한지 1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서야 사건의 당사자였던 게이머가 부탁한 한 마디에 주목하고 있다.

대상화란 어떠한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일반적인 언어와 표현으로 구체화 시키는 과정이다. 이는 특정 사회에서 통용되는 개념을 만들기 위해 진행되며, 곧 프레임이 된다.

우리는 이 프레임 때문에 크게 상처받았다. 우리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외부에서 우리를 정의 내려 붙여버린 꼬리표 때문에 고통 받았다. 우리, 오타쿠, 특히 후죠시들은 프레임이라는 커터로 잘려나가는 아픔을 알고 있을 터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페미니즘이라는 길을 택했다. 잘려나가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불평등하고 부조리한 편견에 맞서 싸우기를 택했고 함께 바꾸어 나가는 길을 택했다.

그러니 다시 묻고자 한다. 어째서 그가 우리에게 대상화를 하지 말아달라 부탁하였는지, 자신은 여성 게이머이기 때문에 차별 받은 것이 아니라 하였는지.


(출처 : 구글 검색)

 

그가 언급했듯 그는 여성 게이머이기 때문에 공격받은 것이 아니라 실력을 의심받았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어떤 이슈가 새로이 도드라졌다 할지라도 사건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그러해야겠지만, 특히 사상을 다루는 이들은 자신들의 안에서 새로운 프레임이 생겨나고 있지는 않은지 언제나 경계해야 한다. 좋은 의도로 시작되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진행되는 일 또한 한가지 관점으로만 바라보면 왜곡되고 변질 될 가능성이 있다. 지속적으로 설명했듯 프레임이란 의도적으로 만들어질 때보다 은연중에 만들어졌을 때 더욱 치명적이다.

맹목은 때론 고립을 낳는다. 고립은 폐쇄적인 환경을 만들고, 폐쇄성은 단일화와 경직을 부른다. 안전한 프레임 바깥쪽의 모든 것을 적대하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페미니즘 뿐 아니라 모든 사건에는 다양한 의견과 견해가 존재한다. 이를 하나로 묶고 모든 사건에 대입하려고 하는 자세는 다양한 의견 발전을 저해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보고 싶은 것 만을 보고 설명하고 싶은 대로만 설명을 하면 언젠가는 우리도 우리가 깨고 나가고자 했던 프레임의 안에서 누군가를 상처입히게 될 지도 모른다.

타인의 의견을 유동적으로 받아들이자. 나의 의견이 섣부른 프레임이 되고 편견이 되지는 않았는지 꾸준히 성찰하자. 어떤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 또 다른 누군가를 인간이 아닌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자.

자신의 생각이 남과 다름을 인정하는 일은 힘든 일이다. 안정적인 방법을 버리고 굳이 남을 이해하기 위하여 어렵고 불편한 길을 가는 것 역시 그러하다.

그러나 우리들은 덕후이자 게이머이며 여성이다. 사회가 만들어 낸 편견에 갇히고 구조가 만들어 낸 프레임에 고질적으로 피해를 입던 우리이다. 뿌리 깊은 편견에 지지 않도록, 우리의 손으로 날카로운 커터를 만들어내지 않도록 꾸준한 경계와 유연한 자세를 잃지 않기를 권하는 바이다.

 

♥ 기사에 대한 응원은 SNS에 셰어하기!
1 Comment

Post A Comment

LINEUP 정보    MAGAZINE    COMMUNITY    REGISTER/LOGIN          © 2018 LINE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