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트북 페어를 다녀오다

— 예술, 독립출판, 페미니즘의 키워드

시대는 바야흐로 개성과 자유의 시대이다. 상업성이나 화제성을 따지지 않고도 자유로이 자신의 특기분야를 빛낼 수 있는 독립출판이 재조명을 받는 것도 그러한 시대를 타고나서 일 것이다. 또한 개성과 자유의 키워드를 내세웠을 때 빠지지 않는 분야가 예술이다. 나이와 지위는 물론 소속과 국적까지 제쳐두고 창작물을 통해 통하고 논한다. 책의 형태로, 직접 그리거나 편집한 편집물의 형태로, 혹자는 예술의 비중이 높은 출판물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내보인다. 자칭 타칭 소수 의견을 대표하는 예술분야와 독립출판이 아트북이라는 이름 하에 만났다. 출판사 사장님부터 작가, 공간 연출자와 사진 작가, 화가와 일러스트레이터, 덕후에 이르기까지 한 자리에 모였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일본과 중국 등 타국의 독립 출판사와 예술가들의 ‘직접 판매 부스’ 를 전면에 내세워 각각의 목소리로 자신의 창작물을 대중에게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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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8회차를 맞이한 언리미티드 에디션 서울 아트북 페어 2016(이하 UE8)이 11월 25일 금요일부터 27일 일요일까지 광화문에 위치한 일민 미술관에서 열렸다. 아트북 페어니 독립출판이니 덕후와 무슨 상관이냐고 물어볼 수 있겠다.

허나 이 행사 결코 덕후, 특히 후조와 무관하지 않다.
예술, 독립출판, 페미니즘. 오백리 밖에서도 보이기를 기원하며 제목에 크게 달아 둔 세가지 키워드 때문이다.
그럼에도 확 와닿지 않는다면 조금만 인내심을 갖고 필자의 설득에 귀 기울여 주셨으면 한다.
후조만큼 예술 관련 독립출판에 깊게 관계되어 있으며 페미니즘과 직접 연관되어 있는 문화계층은 없다.
후조만큼 1차와 2차, 더 나아가 3차 4차까지 파고 들어가며 글, 그림, 굿즈 제작, 기타 등등 상상을 초월하는 연성력을 뽐내며 언더그라운드 예술을 즐기고 생산하는 문화 계층은 없다.
그 뿐인가? 날이면 날, 달이면 달 꼬박꼬박 독립출판물을 판매하고 구매하는 행사도 열고 있다.

독립출판을 빼 놓고 후조를 논할 수 없다.
또한 후조는 후조시(腐女子)라는 명칭에 아깝지 않게 비 주류 문화의 소비자 겸 비 주류 문화 집단 여성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여성이 주체가 되는 문화이기에 여성 인권 문제에 민감하고, 예민할 수 밖에 없다.
후조만큼 예술, 독립출판, 페미니즘의 키워드를 바로 옆에 두고 즐기는 문화계층이 없는 이유이다.
위의 서술로 당신이 이 글에 관심을 가져준다면 좋겠다. 아직은 낯설고 생소할 수 있지만 동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면 앞으로 꾸준히 생각해야 할 주제들이기에 후조인 당신에게 이 글을 권해본다.

 

예술

찬 바람을 뚫고 일민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필자를 반긴 것은 다음 웹툰 연재작인 <혼자를 기르는 법> 작가인 김정연 님의 캐릭터였다. 익숙한 캐릭터와 눈인사를 나눈 뒤 바로 발을 들인 곳은 1층 전시관이었다.

(출처 : UF8 공식 홈페이지)

UE8은 일민 미술관의 1층부터 3층 전시실을 빌려 이루어졌다. 1층에만 약 50여 부스, 2층의 80여개의 부스와 3층 39개 부스까지 어림잡아 150 부스는 훌쩍 넘는 행사장을 둘러보는 내내 감탄스러웠던 점은 각계각층에서 모인 예술이 출판물이라는 형태를 빌어 저마다 자유로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트북이라고 해 봤자 단순히 그림과 글이 함께 인쇄 된 도서를 파는 판매전이겠지,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던 필자의 시야가 얼마나 좁았던지 통감한 순간이었다. 아트, 즉 예술 분야는 쉽게 미술이나 사진 등 회화와 미술적인 분야로 해석 될 여지가 많다. 허나 해당 행사에 도드라진 예술의 모습은 생각 이상으로 다양하고 또한 친숙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먼저 흔히 알아 익숙한 형태인 미술적 예술을 다루는 부스가 어느 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눈에 든다. 주목할만한 부분은 각 부스들이 ‘아트북’이라는 개념을 다루는 법이었다. 어떤 부스에서는 개인의 작업물을 모아 출판한 형식을 띠고 있는가 하면 어떤 부스에서는 이야기와 일러스트를 접목한 형태의 동화책을 판매하기도 한다. 또 어떤 부스에서는 일반적으로 책을 이야기 할 때 떠올리고는 하는 활자나 간행물의 형태가 아닌 말 그대로 예술을 목적으로 한 출판물을 제작하여 판매하기도 한다. 이번 UE8에서 굉장히 인상 깊고 흥미롭게 보여졌던 부분이 바로 예술을 목적으로 한 출판물이 아니었나 싶다. 말이 복잡하지 우리네 언어로 하자면 ‘팬시’라고 부르는 출판물이 그것들이다. 직접 그린 회화와 일러스트를 표지, 혹은 문구의 형태로 제작하여 판매한다. 개중에는 직접 만든 수공예품이나 의류, 액세서리 등을 파는 부스도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보던 형태다.

평범한 평일 낮 시간대 UF8 행사장의 모습.jpg

다년간의 행사를 뛰며 겪었던 한 겨울 대기 줄의 동지애라거나, 이만하면 일찍 왔겠지 싶어 안심했더니 다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지 행사장에서 내내 사람 뒤통수만 우러러보았던 기억, 존잘님 부스 앞 가득한 인파에 발만 동동 구르던 추억이 언 듯 스쳐 지나간 순간이었다. 예술가는 자신이 제작한 창작물을 출판물의 형태를 빌어 판매한다. 소비자는 제작자와 얼굴을 마주 대고, 때로는 설명도 들어가며 교감한다.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에 창작자와 소비자가 소통하는 공간을 덕후 문화권 밖에서 경험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덕후라는 문화 소비층이 아니라면 위에 서술한 경험을 어디서 또 해보겠나 싶었는데 그걸 UE8에서 겪었다. 예술과 판매 행사. 붙여 놓으니 정말 안 어울리는 단어가 숨쉬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놀라운 한편, 필자는 물론 덕후에게 익숙한 그 행사들이 겹쳐 보여 굉장히 묘한 느낌을 받았다. 같은 성격의 같은 의도를 갖고 실시되는 두 행사에서 예술의 앞 뒷면을 본 것만 같았다. 미술과 일러스트 외의 예술이 인상 깊지 않았느냐 묻는다면 단연코 아니라고 대답하겠다. 아트 북 페어를 다녀오고 난 뒤 가장 감명 깊었던 부분이자, 우리 덕후들과도 깊게 연관 된 키워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독립출판

UE8를 방문 한 경험은 식견 좁은 필자에게 놀라움의 연속이었지만 단연 인상 깊었던 점은 ‘독립 출판’ 이라는 키워드에서 묶인다. 단락을 열기에 앞서 간략하게 독립 출판에 대해 설명해야겠다. 독립출판의 정의를 내리기란 쉽지 않지만 간단하게 출판사가 아닌 개인이 주제, 형식, 틀부터 제작과 유통까지 직접 해결하는 출판형식이라고 알고 계시면 되겠다. 더 쉽게 말하자면 우리가 내는 동인지가 독립출판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 UE8의 큰 주제는 이러니 저러니 해도 ‘개인’과 ‘예술’과 ‘책’이다. 예술을 주제로 개인이 출판 한 독립 출판을 북 페어의 형식으로 일반 소비자에게 노출시키고, 그 사이에서 제작자와 소비자가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것을 의의로 열리는 행사이다. 다양한 종류의 예술이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다양한 형태의 출판물로 제작된다. 책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인 인쇄물로써 가장 정의 내리기 힘든 예술이라는 장르가 모습을 드러내니 두루뭉실하게만 생각되었던 개념이 보다 확실하게 다가온다. 특히 예술 장르는 장르의 특성 상 상업성보다는 예술성을 중시하기 마련이다. 그러한 특징 때문에 일부 소수에게만 자신에게 맞는 예술이 소비되기 마련이고 수익성을 중시하는 출판시장의 특성 상 예술 종류의 서적은 기피되거나 보다 대중에게 걸맞은 모습으로 출판되곤 한다.

 

(출처 : 사조영웅전 중)

 

이러한 예술 장르 서적이 독립 출판이라는 장르를 만나 보통 책이라면 상상도 못할 다양한 형태를 빌어 출판물로 재탄생 된다.
이것도 예술이라고 쳐야 맞나? 싶은 장르부터 마니악하고 독특한 소재까지 독립출판물의 독특한 시장구조와 소비자층의 성원을 받아 책 혹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출판물의 형태로 소비된다.
예를 들어 필자가 보았던 독특한 주제의 부스를 소개하고자 한다.

부스 [돌곶이요괴협회+초우상회]

필자는 부스 [돌곶이요괴협회+초우상회]에서 <귀여운 요괴 도감>을 한 권 구매했다.
덕후적 특성 상 요괴와 오컬트에 관심을 갖지 아니할 수 없는 구조이기에 책의 표지를 보자마자 철저하게 영업을 당한 참이었다.
샘플 북을 펼치니 귀여운 요괴 일러스트와 함께 일본어 명, 간략한 요괴 설명이 수록되어 있다.
자세하게 까지는 아니더라도 요괴의 이름이나 유래부터 아 이 요괴가 뭐였지 싶을 때 요긴하게 찾을 수 있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한 손에 들어오는 작은 크기이나 들어 갈 요괴는 다 들어가 있어 뿌듯한 마음으로 한 권 사 들고 부스 앞을 떠났다.
이때 <귀여운 요괴 도감>이 시중에서 판매 될 수 있을지 여부를 따져보자면 수익을 낼 수 있을 만큼의 화력이 나오지 않기에 출판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 난다. 요괴라는 독특한 소재에서부터 구매자 층이 확연히 적어지기 때문이다.
독립출판의 순 기능은 이때 발휘된다. 특정한 집단 내에서 특정한 주제로 제작 된 특별한 책들이 의미가 있을 수 있는 구조로 시장이 형성되어있다. 이러한 구조는 이른바 우리들의 리그인 ‘동인지’ 시장에도 적용된다. 동인지의 특성이 애초부터 독립출판과 거의 일치한다고 보면 본 행사의 흥행과 긍정적인 반응에서 굉장히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결론이 섰다.

물론 그 이전에 서브 컬쳐와 2차 연성 시장이 예술의 한 장르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가장 큰 난관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이 행사에 참여한 개인 창작자와 그 창작물에게 멸시와 비웃음이 아닌 관심과 성원을 보냈다는 사실에 의의를 두어야 한다. 연성러 개개인이 창작자이자 예술가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와, 그 것을 소비하는 소비자와 덕후가 앞으로 독립출판 시장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이 곳에 있었다.

 

페미니즘

긴 글 읽어주신 당신께 리스펙트 (출처 : 방송의 적 중)

지금까지 쭉 읽어 내려 온 분이라면 UE8이 개성 넘치는 소수의 목소리가 예술과 출판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의 행사가 된 케이스 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주류가 아닌 비 주류, 기성이 아닌 신흥 세력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행사로도 볼 수 있다. 사진, 일러스트, 음악, 문학 기타 등등 예술을 주제로 하는 부스 중에서 이목을 잡아 끄는 부스 몇 개가 있었다. 생각 이상으로 많은 부스 수에 놀라는 한 편 수긍이 갔다. 예술의 목소리, 비 주류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자리에 페미니즘을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행사장 전반에 퍼져있었다.

부스 [메타후조x빠-순]

필자가 평소에도 접해 아는 이름들도 상당 수 참여했다. 메타후조, 페미로그 등 트위터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들이 그런 이들이었다. 이번 년도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로 하여금 덕후, 특히 후죠시들을 중심으로 펼쳐진 페미니즘 운동과 이슈들이 잡지와 출판물의 형태로 제작되어 소비자들의 손에 전해지고 있었다.

 

페미니즘 이슈 관련 부스 [요술보지 프로젝트]

텀블벅에서 활발히 프로젝트를 진행중인 요술보지 프로젝트, 트위터와 텀블벅 등에서 활동 중인 젖은 잡지, 이 외에도 개인이 관심을 가지고 진행하는 페미니즘 부스를 층마다 한 부스씩은 만나볼 수 있었다. 출판이라는 형태를 빈 창작물들이 여성의 인권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쭉 페미니즘 활동은 있어왔고 여성 인권 이슈를 다룬 프로젝트와 문학계 혹은 예술계 활동도 있었지만 북 페어와 같이 일반인도 쉽게 접할 수 있는 행사에서 한 부스도 아닌 여러 부스가 목소리를 내었다는 소식은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음지에서만 이야기되고 되어야만 했던 이슈를 사회의 비 주류, 혹은 약자로 치부되는 예술인이 모든 사람에게 두루 읽히고 구체적인 형태를 지닌 출판물로 제작해 배포했기 때문이다. 억지로 파헤쳐 내 진 부분도 있으며 참다 못해 터져 나온 목소리도 있겠지만 해당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형태화 되었다는 사실이 단순한 현상에서 끝나는 단순한 이슈가 아니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또한 이는 여성이자 예술에 밀접하며 그 문화를 소비하는 우리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요함을 나타내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언리미티드 에디션 – 서울 아트북 페어 2016, 일민 미술관

 

기사를 쓰는 지금에 와서는 북적북적한 인파와 수 많은 목소리의 벅참, 약간의 쌉쌀함, 뿌듯함이 공존했던 방문이었다 회고한다.
생각보다 많은 관심에 한 번 놀라고, 다른 곳에서 접하기 힘든 예술가들의 개성 넘치는 목소리에 한 번 더 놀랐으며, 이제는 많이 달라졌고 앞으로 더 달라져야 할 문제들이 그들의 입과 손을 통해 만들어 지고 있음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예술과 출판과 페미니즘. 어디까지나 필자의 개인적인 감상과 짧은 생각으로 작성 된 글이지만, 어디까지나 후조인 필자이기에 작성할 수 있었던 글이다. 그렇기에 이 글의 끝부분을 읽고 있는 후조인 당신에게 이 글의 이야깃거리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닿기를 바란다.
서울 아트북 페어 2016년 차가 종료되었다. 이제는 다음 겨울에 다시 열릴 2017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기대하며 글을 마무리 할 차례이다.
다음 년도에는 어떠한 예술이, 개성 충만한 독립출판물이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날지 쉬이 짐작할 수는 없지만 분명 만족스러운 행사가 되리라 믿으며 2017년도 11월 달력에 일찌감치 아트 북 페어 방문 일정을 적어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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