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캐릭터 커뮤니티를 알고 싶어한다.

며칠 전 트위터를 발칵 뒤집어놓은 사건이 발생했다. 때는 아주 늦은 토요일 밤, 발단은 방송 하단에 잠깐 출력된 그다지 길지도 않은 문장 때문이었다. 사회 전반에서 다양하게 발생하는 사건을 취재하는 저널리즘 팀에서 이야기한 ‘제보 요청’이 바로 그것이다. 이 문장에 관련 키워드들은 새벽 내내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고, 다음날 낮 시간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해당 저널리즘 팀은 ‘SNS의 캐릭터 커뮤니티’에 대해 알고 계시거나 ‘캐릭터 커뮤니티로 인해 피해를 입은 분’ 들의 사례에 대해 알고 싶어했다. SNS 캐릭터 커뮤니티, 즉 자캐 커뮤니티(이하 자커, 커뮤)는 덕후 스스로 만들어낸 자작 캐릭터를 통해 스토리를 구축하거나 교류하는 서브컬쳐의 문화로, 이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자캐 창착 및 자커 입문 가이드 기사를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어떻게 보면 제보 요청 두 문장이 평소처럼 스쳐 지나갔을 뿐인 일이었다. 대부분의 시청자에게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문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많은 덕후들은 걱정하고 불안해하며, 오랜 시간 이 이슈에 저마다 한마디씩 의견을 보탰다. 아직 제작 의도가 무언지, 방향성이 무언지, 습득한 정보가 어떤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지 윤곽조차 나오지 않았음에도 뭇 덕후들이 일제히 우려의 목소리를 낸 까닭은 무엇일까? 필자는 이번 사건에서 터져 나온 불안과 불신의 근원이 미디어와 서브컬쳐의 오랜 악연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출처 : 구글검색)

 

막 인터넷이 각 가정에 보급될 무렵, 필자는 단순히 웨딩 피치를 좋아했던 꼬맹이였기 때문에 1세대 혹은 2세대라고 불리는 덕후들과 매스미디어의 관계를 잘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하게 악연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적어도 아래에 기술한 사례들을 겪으며 덕질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폭력을 낳는 인큐베이터에 대해 들어보셨는지 모르겠다. 폐쇄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으며 자극적인 소재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그 것을 직접 경험할 수 있게 제작된 예비 범죄자의 온상으로, 옛날에는 구로에서 요즘에는 판교에 가면 이 인큐베이터를 만들어 파는 회사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출처 : 구글검색)

 

필자는 폭력 인큐베이터를 7살 미취학 아동이었을 적부터 플레이 한 골수 유저로 현재 모니터 앞에 앉아 서브컬쳐 관련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로 자라났다. 이 물건, 이른바 게임이라고 불리는 콘텐츠는 정말 오랜 세월 동안 대중에게 있어 빌런과도 다름없는 존재였다. 언제부터였는지 확언할수는 없지만 보통 청소년 범죄의 뒤에는 게임이 최종 보스마냥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최근에는 범죄란 여러 복합적인 상황이 겹쳐져 발생하며, 게임이 일정 부분 영향을 끼쳤을 수는 있지만 이유가 될 수는 없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그래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이전보다는 게임과 범죄를 함께 다룬 기사가 체감이 될 정도로 줄어들었음은 확실히 느껴진다.

 

(출처 : 구글검색)

 

매스미디어와 서브컬쳐의 악연을 논하는데 오덕 페이트 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지금은 방송종료 된 모 프로그램 십덕후 특집에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의 등장인물인 ‘페이트 테스타로사’ 덕후가 출연했다. 이 덕후는 캐릭터와 진심으로 결혼하고 싶다는 발언을 하며 다키마쿠라를 연인처럼 대하는 모습으로 등장했다. 덕후적인 관점으로 보았을 때 아주 이해가 가지 않는 행위는 아니다.

피규어를 모은다거나 뫄뫄와 행복하고 싶다거나 제법 진지한 자세로 작품과 가상 인물을 대하는 자세는 어떤 덕후이던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방송은 해당 인물의 행위를 일반적이지 않은 기형적인 형태로 묘사하고 편집하여 일반 대중에게 ‘오타쿠=이상한 사람’ 이미지를 더욱 깊게 각인시켜버렸다. (물론 해당 회차에 등장한 인물은 방송 이후에도 악질적이고 충격적인 방법으로 일부러 시선을 집중시키는 등 태도가 무척 불량하였다. 이로 미루어보아 미디어의 악의적인 편집의 일방적인 희생자라고 볼 수는 없기에 추가 서술한다.)

소재도 소재이지만 이를 다루는 미디어의 성격이 주목과 자극을 추구했기 때문일까, 해당 회차는 2010년도에 방영되었지만 여파는 여전하다. 이때 당시 수면위로 떠오른 안여돼(안경 여드름 돼지)나 가상 인물과 연애하는 정신병자 등의 혐오 발언이 아직까지 쓰이고 있음은 물론, 일반 대중을 중심으로 증가한 서브컬쳐 향유자 혐오수치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덕 페이트 사건은 어떤 문화에서는 일반적이고 평범할 수도 있는 일을 그 문화에 대해 무지한 누군가가 흥미를 위해 단편적으로 인용하면 어떤 참사가 벌어지는지, 특히 그 일을 행하는 대상이 파급력이라는 힘을 지니고 있다면 얼마만큼의 파괴력을 내는지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

서술한 두 사건 이외에도 언급할 만한 사례가 굉장히 많다. 2차 저작물 판매전을 불법적인 음란물 거래의 장으로 취재하려 한 건이나, 구체관절인형을 수집하는 콜렉터들을 취재 후 인형의 비싼 가격만을 강조하거나 오너의 애정 등을 곡해하여 편집 한 뒤 방송한 건, 세간에 퍼진 부정적인 이미지를 그대로 차용하거나 더욱 희화화하여 유머 혹은 개그 소재로 사용하는 등의 사례도 있다.

위의 사례로 알 수 있듯 매스미디어에 비치는 서브컬쳐 향유자들의 모습은 종종 이해할 수 없는 괴짜 이상의 무언가를 넘어 정신이상자 혹은 자극적인 문화를 향유하는 잠재적 범죄자로 묘사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처 : tvN SNL코리아 중)

 

문제는 그 정보를 생산해내는 매스미디어의 힘이 생각 이상으로 강력하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거의 모든 정보가 사람의 입을 거치고 발로 전해지지 않으면 널리 퍼지지 못했다. 허나 지금은 인터넷 창에 띄우기만 하면 갓 만든 따끈따끈한 정보가 각종 플랫폼을 통해 절대다수의 대중에게 전달된다.

의도적으로 편집을 거친 제작물들이 쉽게 제작되고 유통 될 수 있는 지금, 정보의 생산기관이자 유통기관인 매스미디어가 지닌 권력은 무엇보다 강력하다. 어떤 의견을 전달하고 퍼트리는 속도가 무척 빠르기 때문에 여론이 생성되는 속도 또한 빠르고 몸집 또한 빠르게 불어난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필자는 서브컬쳐와 이를 향유하는 소비자를 단편적으로 판단하고 정보를 제작하는 매스미디어의 제작 태도를 문제 삼는 것이다.

문화는 한가지 단어와 한가지 특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이는 덕후 문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모든 문화에는 음지와 양지가 공존하며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구조가 복잡하여 소속된 구성원조차도 그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워한다. 어떤 문화를 외부에서 다룰 때 가장 우선적으로 주의해야 하는 부분으로 내부적인 부분을 포함한 주변 생태계를 제일 먼저 파악해야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매스미디어가 엄연한 문화 중 하나인 서브컬쳐를 다루는 모습은 전과 다를 바 없이 일관적이다. 서브컬쳐를 향유할 때 얻을 수 있는 순기능은 무시한 채 역기능만을 강조한다. 서브컬쳐에 적을 둔 소비자들과 문화가 지닌 다양성을 인정하는 대신 도드라지는 특징만으로 집단을 정의한다. 생태계는 고사하고 가장 기본적인 이해조차 없이 위험하고 이해할 수 없는 집단이라는 딱지를 붙여버린다.

순식간에 수 천명의 사람에게 전달되는 방송을 제작하고, 수 만명에게 읽히는 기사를 써내는 매스미디어가 편향적인 시각으로 특정 집단을 정의 내려도 괜찮은지 의문이 든다.

심지어 수 차례나 비슷한 피해사례를 낳았음에도 여전히 덕후 문화의 역기능을 문제의 이유나 결함으로 정의 내린 뒤 접근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음을 보고 있노라면, 미디어에게 있어 서브컬쳐란 모종의 이슈 제조기 정도에 지나지 않나 의심까지 들 지경이다.

 

(출처 :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 중)

 

상해, 폭력, 음란, 욕설, 때때로 불법. 온갖 자극적인 단어가 뒤엉켜있는 유리상자를 밖에서 바라본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당연히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시한폭탄처럼 보일 것이다. 서브컬쳐의 본질은 본디 비주류문화, 즉 주류문화의 이면에 위치한 그림자 같은 성질을 띄고 있다. 비주류의 성질을 가진 서브컬쳐에는 자연스레 주류에서 다룰 수 없는 이야기들이 흘러 든다. 공식적인 석상에서는 표출할 수 없는 분노, 누구에게 대놓고 말하기에는 낯부끄러운 음담패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하드보일드한 세계에 대한 동경 등이 바로 그러하다.

문단의 첫머리에서 유리상자의 예를 들었다. 필자는 지금 시대의 서브컬쳐를 형태로 표현하자면 딱 유리상자와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어디서 누가 언제 부어놓았는지 모를 괴이한 것들이 안이 들여다보이는 작은 상자 안에서 아슬아슬한 수위를 유지하며 넘실댄다. 안에는 창의적이고 흥미로워 보이는 것들과 더불어 척 보기에도 심장이 내려앉는 위험물질이 뒤엉켜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우리가 사랑해 마지 않는 유리상자 안에는 다소 위험한 물건들이 들어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그 위험한 물건들이 서브컬쳐의 전부는 아니라는 부분이다.

다만 다소 폐쇄적인 커뮤니티 자체의 룰 때문에 발생하는 난해한 접근성과 언듯 무질서해보이는 부분들이 오해를 낳을 수 있음은 이를 즐기는 향유자들 사이에서도 건의되는 문제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는 외부보다는 내부에서 성찰하고 고쳐나가야 할 부분이다. 순간의 이슈에 반짝하는 식으로 반응하기보다는 이를 향유하는 소비자들의 특성 또한 고려하기를 권유한다.

지금 이슈가 되고 있는?커뮤 문화를 미디어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잠재적인 범죄자 제조기일지 모른다. 그러나 ?자캐 커뮤니티는 캐릭터, 나아가 세계를 창조하는 스토리텔링 도구이자 창작자들 간의 소통수단이다. 뿐만 아니라 낮은 연령대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가장 기본적인 프로슈머 양성의 장으로도 볼 수 있다. 사회적으로도 활동에 제약을 받는 서브컬쳐 향유자에게 캐릭터 커뮤니티만큼 1차 저작물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이 없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웹툰, 게임, 1인 창작자, 프로슈머 등 사회가 주목하는 차세대 콘텐츠 제작자들의 대부분은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서브컬쳐와 연관되어있다. 하루하루를 그 누구도 가본 적 없는 새로운 세계로 탐험해나가는 장인 겸 탐험가 집단의 인큐베이터인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순기능들이 세상에 드러날 때, 서브컬쳐라는 이름은 슬그머니 모습을 감춘다. 부정적인 기능을 소개할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출처 : 영화 해리포터 중)

 

각종 미디어에서 살인사건을 일으킨 학생이 즐겼던 SNS 커뮤니티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디어가 다시 한 번 서브컬쳐에 포커스를 맞추기 시작한 지금, 덕후와 매스미디어의 중간에 서 있는 필자로서는 이 사건이 이전 사례들처럼 단편적이고 편향적인 시각으로 해석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다각적인 접근 없이 무엇이 사건의 이유라고 규정하고 이를 파고드는 일을 경계하는 것이 언론이 마땅히 해야하는 바이다. 정보를 작성하는 미디어 측에서 콘텐츠 제작 전에 서브컬쳐와 이를 즐기는 향유자에 대한 복합적인 고려를 누락한 것은 아닌지, 철저한 이해를 바탕으로 비판하고 있는지 다양한 시야에서 고민해주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네 덕후에게 전언을 띄운다. 덕후 용어 중에 ‘머글’이라는 단어가 있다.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마법사 집단이 비 마법사 집단을 통칭하여 머글이라고 부르는 것을 하나 둘 따라 부르던 것이 굳어져 공용어가 된 것이 바로 그 것이다. 폐쇄적이고 환상적이며 어떠한 사회 속에 분명히 존재하나 실체를 찾아보기 힘든 마법사 사회와 우리네 덕후 사회는 닮은 부분이 많은 듯 하다. 그렇기에 자연스레 덕후가 아닌 일반 대중을 이르는 말이 머글이 되지 않았나 싶다.

스스로의 특성을 고립된 마법사와 동일하게 여기는 서브컬쳐 향유자들이 즐기는 문화 역시 마법과 많이 닮아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무언가를 창조한다거나 일반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점들이 그러하다. 그러니 부디 잊지 말았으면 한다.

우리가 다루는 마법은 마냥 즐겁고 유쾌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기도 하며 이해 불가능한 불쾌한 것이도 하다.

우리들 스스로가 서브컬쳐 향유자를 특별한 존재로 여기지 말았으면 한다.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특별함을 만들고 특권을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방식이 틀린 것도, 우리의 방식이 틀린 것도 아니다. 그저 말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다른 것 뿐이다.

우리가 향유하는 문화가 어떤 문화인지 한 번쯤 성찰해보기를 권한다. 같은 문화를 향유하던 중 무뎌지고 익숙해져 마땅히 경계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경계심이 무뎌진 것은 아닌지 돌아봐주었으면 한다. 우리가 우리의 것을 능숙하게 통제할 수 있어야 미숙하다 여겨지는 외부의 간섭을 최소화 할 수 있다.

미디어와 덕후들이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제 2의, 제 3의 사례가 다시 생겨날 수 있다서로에게 지녔던 지금까지의 오해를 풀어나갈 수 있도록, 상호간의 이해와 실천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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